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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동 관곡마을 지켜주는 향나무,당고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매년 개최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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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남
기사입력 2009-08-25

▲ 1982년 10월 보호수로 지정된 하중동 관곡마을 동아아파트에 있는 향나무.     ©박종남
 
 
높이가 약 12m에 가슴 높이의 둘레가 3m가 넘는다. 수령이 천년이라고 하나 근거는 없다. 하지만 마을 어르신의 말을 빌리면 어린시절 보던 나무랑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임에는 분명하다. 게다가 나무의 수형이 아름답다. 시원한 곡선미와 잘 뻗은 가지는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향나무는 베실구지에 처음 민가가 들어섰을 때 주민들이 기념으로 심었다고 하여 신성시하고 있다. 구전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중엽 많은 사람들이 장질부사로 목숨을 잃어갈 때 마을에 사는 권씨 꿈에 수 백 명의 아이들이 이 마을로 몰려왔다. 권씨가 이 나무에 걸터앉아 지팡이를 흔들며 아이들의 접근을 막자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 뒤 며칠이 지나 마을의 열병이 멈춰지고 마을이 평온해졌다고 한다.

나무 앞에서는 향나무 고사가 일년에 두 차례 치러진다. 정월 1월초 이튿날과 칠월초하루가 바로 고사 지내는 날이다. 마을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는 고사는 연령순으로 돌아가면서 당주가 되며 한가구당 오천원씩 거출한 뒤에 통장이랑 협의하여 제수를 마련한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려고 대기 중인 지난 8월 20일. 반신반의 하면서 현장을 찾았다. 준비가 한창이다. 날씨는 문제가 아니었다. 작년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는 고사는 빗속에서도 진행되었다.

▲ 축문을 읽고 있는 통장       ©박종남
▲ 당주가 잔을 올리고있다      ©박종남
©박종남
▲ 비는 내려도 의복을 갖춘 당주.       ©박종남
▲ 노인회 어르신들의 제 참여        ©박종남

고사의 순서는 강신을 하고 축문을 읽는다. 당주의 절이 있는데 이때 남자는 3번 여자는 4번을 한다. 자녀가 있으면 이어서 한다. 동네 어르신부터 나이순으로 이어가면서 절을 하고 고사에 참석한 지역 인사와 관심 있는 시민들도 절을 한다. 이어서 소지 태우기가 있다. 하지만 소지에는 염원을 담은 글이 없다. 다만 정해진 순서대로 7장의 소지를 태우면서 통장이 입으로 원하는 바를 읊조린다. 소지의 순서도 정해져있다. 부정소지→대동소지→당주소지→풍년소지 →우마소지→병마소지→ 수마소지 순이다.

통장은 입으로 소원하는 바를 읊조리고는 소지를 태워 높이 날리는데 이 때 명태를 이용하여 더 높이 날려 올린다. 소지를 태우고 나면 고수레를 하는데 종이에 싸서 향나무 높은 곳에 꽂아둔다. 시간이 자난 후에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다.

예전에는 아이들의 몫이었지만 현재는 그 자리에서 꺼내어 어른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다.
 
▲ 고수레를 하기 위해 따로 싸는 음식과 돈     ©박종남

“음복 한잔이면 쌀이 천석”이라며 음복하기를 권하는 노인회 어르신들. 정월에는 떡국을 삶고 여름에는 콩국수를 삶아서 나누어 먹는다. 과일과 제수에 쓰였던 고기 부침개 등을 참석한 주민들과 함께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 당고사철- 당고사 진행을 위한 기록들     ©박종남
▲     ©박종남

어르신들은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고사를 지내려고 잘 차려입고 나타나셨다. 마을의 옛이야기를 물었더니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당고사 지내러 막 왔는데 뭐를 알겠냐고 농이다. 하지만 한분이 동네 얘기를 꺼내자 앞 다투어 할 얘기가 많아진다. 향나무의 영험함은 한국전쟁 때 이 마을에도 무차별 폭탄이 투하되었는데 향나무 옆 나무에 걸려 터지지 않았으니 이 또한 향나무의 은덕이란다. 배가 드나들 때 물왕저수지 부근 현재 농협 창고 앞에 수산시장이 섰다는 얘기도 벼락바위 근처에 우물이 있는데 불 맛이 워낙 좋아 뱃사람들이 길러다 먹었다고 한다. 우물을 덮고 집을 지었는데 좋지 않은 일만 생겼다는 얘기도 빼지 않는다.

고사의 유래는 아득하여 모르나 어린시절 향나무가 놀이터였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고사를 주재하던 만신 얘기가 나오자 저마다의 기억을 열어 한마디씩 보탠다. 아주 먼 얘기가 아니라 그들 기억 속에 생생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생소한 먼 이야기 같다.

유난히 이 동네 출신의 수암면장이 많았다고 자랑하며 이 동네에는 안동 권씨들이 세거 했다기보다 고성이씨 경주김씨 안동장씨 경주이씨들이 많이 살았다고 말해준다.
 

▲     ©박종남

고사를 지켜보면 젊은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제수를 차리고 음식을 나르고 심부름을 마다 않는다. 어르신들은 앉아서 젊은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일일이 지시를 하고 부탁을 한다. 보기에 좋다. 내 자식이 아닌 누군가에게 맘 편하게 부르며 일을 시켜도 무방한 모습이, 그래도 웃는 얼굴로 순순히 대답하며 따르는 모습이. 청년회에서 노인회까지 한마음되어 동네 행사를 치르는 관곡마을. 향나무 고사가 쭉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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