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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방문기 - 개성, 참 가깝네요

금단의 선 훌쩍 넘어 개성시내 곳곳 둘러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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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기자
기사입력 2008-04-28

2006년 2월25일부터 27일까지 2박3일간 금강산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나는 2008년 4월26일 개성 관광을 다녀왔다. 처음 남측출입사무소를 통과하며 비무장지대를 넘을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던 나는 이번에는 제법 담담하게 차장밖을 바라봤다.

지난 해 12월5일부터 시작된 개성관광, 실제로 북측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설레임에 신청했다. 이번 관광은 민주평통 자문회의 시흥시협의회에서 주최했으며, 나를 포함 79명이다. 새벽5시 시청, 새벽5시30분 실내체육관에서 사람들을 나눠싣은 현대아산 차량. 10호.12호 차량이었으며, 전국 곳곳에서  약 5백여명(13호*40명)의 사람들이 이날 개성 관광에 함께했다.

▲ 개성관광 코스     ©김영주

새벽부터 내린 비가 점점 거세져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개성에 도착하자 비가 그쳐 좋은 관광이 될 수 있었다. 또한 비가 한바탕 내리고 간 덕분인지 박연폭포의 물줄기가 더욱 거셌고, 공기는 맑았다.

7시경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하니, 지난해 10월2일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이곳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어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저의 이번 이 걸음이 금단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고통을 해소하고, 고통을 넘어서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그런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군사분계선을 넘기전 노무현 대통령

▲ 관음사 대웅전     ©김영주

노 대통령의 바람대로 12월 문이 열렸고, 개성을 가는데 1시간30분이면 충분했다.  7시30분부터 현대아산 직원에게 관광에 관한 주의설명을 듣고, 휴대폰을 맡기는 등 나라를 넘어가는 '출국'이 아닌, 경계를 넘어가는 '출경' 수속을 밟았다.  말에 의하면 출경이란 말은 고심 끝에 만든 말이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 비무장지대를 넘어서는 북의 경계로 넘어가는 '입경'수속을 밟았다.

▲ 박연폭포 관광지에 있는 간이매점.     ©김영주

금강산 때와 비교해보면, 북측 안내원들이 아직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금강산은 2004년부터 관광이 이루어져서인지 북측 안내원들도 제법 농담도 하고, 웃는 얼굴도 볼 수 있는데, 개성 '입경' 수속에서는 웃고, 인사를 건네도 시큰둥하다. 여전히 현대아산 직원들은 손을 머리위로 흔들며 반갑게 맞이해준다.

8시부터 30분동안 모든 '출경' '입경' 수속을 마치자, 내가 배정받은 12조 버스에 세분의 북측 안내원이 올라탔다. 그중 한 분은 내가 앉아있는 맨 뒤좌석에 앉았으나, 궁금한 것도 뒷전 약간의 설레임에 뒤척이다 새벽길을 나서서 인지, 나는 내내 잠만 잤다.

 

▲ 박연폭포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오고 있다.     ©김영주

첫 관광코스인 박연폭포로 가기위해 차량이 출발하자 오른쪽에 한창 조성중인 개성공단이 보인다. 남측의 69개 업체가 들어와 있다고 한다.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제법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다. 아침내내 비가와서 대부분 장화를 신고 있다. 특히 여성들이 많이 신었는데, 파란색 부츠가 눈에 띈다. 거리는 대부분 자전거이다. 길거리에 차량이 하나도 없다는 게 또한 특징일게다.

▲ 박연폭포 밑으로 송도삼절의 하나인 황진이가 썼다는 글귀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김영주

정확히 9시30분에 박연폭포에 도착했다. 박연폭포는 우리나라 3대 폭포로 유명한데,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설악산의 대승폭포, 그리고 바로 이 박연폭포다. 박연이란 폭포이름은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위에 있는 못의 둘레가 마치 바가지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황진이가 서경덕과 자신과 박연폭포를 송도 3절로 일컬어 더 유명하다.

폭포 옆으로 고려시대 때 쌓은 대흥 산성 북문을 지나 관음사로 올랐다. 대웅전 관음굴에는 유백색 대리석으로 조각한 관세음보살 좌상이 있다. 관세음보살 좌상을 보고 약수물을 먹었다. 북측 여성 안내원의 "각종 병도 낫고, 10년 더 젊어진다"는 말에 생수병에도 가득 담아왔다. 관음사 대웅전의 스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시며, 사진촬영도 기꺼이 해주셨다. 복장과 두발이 다른 점을 엿볼 수 있었다.
 
박연폭포와 관음사에서 즐긴 정취는 기억에 많이 남는다. 11시40분 버스에 올라 개성시내로 들어왔다. 어른보다 손을 흔드는 아이들을 볼 때면 더욱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 13첩 반상     ©김영주

점심은 13첩 반상기이다. 녹그릇에 담긴 밥을 보니 군침이 돌았다. 별미로 시켜먹은 개성냉면은 맛이 별로였다.
 
점심을 먹은 후 정몽주의 위패를 모신 숭양서원에 갔다.  숭양서원은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데, 정몽주의 집터에 정몽주의 충절과 서경덕의 학덕을 아울러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 숭양서원을 설명하는 북측 안내원     ©김영주

서원을 다 보고 나서 자남산 여관을 거쳐 선죽교로 갔다. 남북간 회의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곳. 한광식 시흥민주평통 회장이 '자남산 여관이네요'하고 말하자, 북측 안내원이 "시흥시의 관광객들 수준이 아주 높구만요"하고 치켜 세웠다.








▲ 선죽교에 몰려든 관광객들     ©김영주
▲ 선죽교 앞에서     ©김영주

선죽교는 정몽주가 1392년 이방원에게 피살당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다리가 듣던 것보다도 더 짧다. 다리 옆에는 명필 한석봉의 필체가 새겨진 비각 등 3개 추모비석이 서있고, 길 건너편 표충각 안에는 강직한 충신의 원혼을 달래고, 널리 칭송하기 위해 1740년 영조와 1872년 고종이 각각 세운 두개의 비석이 있다. '거북이의 코를 만지면 비는 게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거북이의 콧등이 맨질맨질하다.


▲ 선죽교 앞에서     ©김영주




개성관광의 마지막 코스인 고려박물관으로 갔다. 이 박물관 건물은 원래는 고려시대 때 지어진 성균관 건물인데, 이 건물을 이용하여 고려시대 유물 1000여점을 모아 박물관으로 꾸몄다. 그래서 박물관 안마당의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들은 대부분 몇 백 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1998년에 박물관을 개관한 박물관은 고려시대 벽화가 인상적이다.


▲ 고려박물관 기념품 매장     ©시흥시민뉴스
 
▲ 담배     ©김영주
 




 
 
 
 
 
 
 
 
 



고려박물관을 나와 들쭉술 두병과 호두, 잣, 과자 등을 샀다. 보통의 관광객들은 역시 술과 나물 등을 많이 샀다. 매대의 판매원들은 물건을 팔기 위하여 매우 적극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고려박물관을 나와 개성공업지구안 현대아산에 들러 사업현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2000년 8월 현대아산이 북측과 협의하여 추진되기 시작한 개성공단 사업은 1단계 100만평, 2.3단계 750만평으로 나뉘어 추진되며 2010년 완공시점에는 2,000여 업체, 인구 45만명, 고용인구 25만명, 연 생산액 150억 달러로 대규모 공단도시로 조성될 예정이다. 개성 대부분을 현대아산과 토지공사가 개발하는 듯 하다. 개성공단의 사업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성공업지구의 성공은 남과 북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 고려박물관     ©김영주

 

▲ 고려박물관내     ©김영주



 
 
 
 
 
 
 
 
 
 
 
그럴싸한 설명을 듣고 다시 4시30분 출경수속을 밟았다. 까다로운 디지털카메라 확인절차. 관광지외에는 모든 사진촬영이 금지된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비무장지대를 넘는 시간은 정확하다. 오전에는 8시, 오후에는 5시이다. 걸리는 시간은 15분.

그 짧은 거리만큼이나 개성관광 일정도 너무 벅차고 짧다. 금강산처럼 2박3일은 되었으면 한다. 왕건왕릉과 공민왕릉, 영통사와 만월대, 첨성대는 보지 못했다. 금강산 관광처럼 교예, 온천, 등산 등 콘텐츠를 풍부히 해서 다시 오고 싶게 했으면 한다. 5월 백두산 관광길이 열리면 다시 한번 북쪽에 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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