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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능소화를 분양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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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기사입력 2006-05-11



날씨도 참 덥다.

이 더운날 전화한통이 온다.
"능소화 안가지고 가나?"
"아, 네"

능소화 분주 묘를 분양해 주실 김규성 전 시흥YMCA 이사장의 전화이다. 벌써 분양을 해가라고 한지 몇달이 지났기에 오늘은 기필코 가리라, 결심했다. 점심을 먹은 뒤 바로 발걸음을 했지만, 어디가셨는지 집에 안 계셨다.

집에는 김규성 이사장님의 어머님이 텔레비젼을 보며, 만두를 드시고 계셨다.
"왜 왔냐고" 물으신다.
"아, 네 능소화 가지고 가려구요"

그러니 손짓을 하며, 밖으로 나가신다.



연못속에 능소화가 있다며, 가져오라 하신다.  분주 묘가  정말 살며시 잠겨있다.

"심어가라"
"못 심는데요"
"나무도 못심나?" 이리오라 하신다.

화분에 직접 심어주시는데, 묶여있는 것 다 화분에 심었으면 하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2년만 지나면 화분갈이를 해주어야 할 만큼 잘 자란다고 하신다.

능소화가 어떻게 자랄까.

정원 어느 나무가 능소화냐고, 물으니 또 먼곳 손짓하신다.



사진에 보이는 나무는 20년된 나무이다. 내가 김규성 이사장님을 졸라 분주 묘를 분양받고 싶었던 이유는 '사랑의 나무'이기 때문이다.

김규성 이사장님은 주변 뿌리에서 난 작은 분주묘를 캐모아, 가식해 놓은 뒤 제자 및 이웃에 나눠주신다. 주로 시흥YMCA의 새로 가입하는 회원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능소화를 증정하기도 한다. 매년 식목일에도 제자들에게 2주씩 선물로 나누어 주니, 분양한 묘목만도 5천여주에 달한다.

때론 제자들이 "드디어 능소화가 피었다며, 곱게 잘 키우겠다"는 전화라도 올라치면 김규성 이사장님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은 상태로, 나누는 기쁨을 누려왔다고 한다.

한 나무만 잘 살리면 수백 주를 만들 수 있다며, 정성스레 가꾸어온 능소화를 10월부터 분양해 준다.

그래서 김규성 이사장님의 집 주변에는 은행나무나 지주목에 심은 줄기가 팔뚝만한 20여년 된 나무 약 30주가 잘 자라고 있다.  

김규성 이사장님이 더 능소화를 분양하는데 애쓰는 것은 아쉽게도 2007년경에는 장현지구의 개발로 이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지런히 분주묘를 분양하고 계신다.



오늘 심어온 능소화 분주 묘. 잘 뿌리내려 나도 언제가는 다른 사람에게 분양해주고 싶다.
잘 자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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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김규성 이사장님이 시흥시민뉴스에 게재한 글이다.
뉴스일자 : 2005-07-18 
  

 능소화 피는 능마을
“철거되기 전에 능소화 꽃구경 오세요”

‘신은 푸른대지를 만들었으나 인간은 삭막한 도시를 만들었다' 고 어느 작가는 말하고 있다. 푸른 하늘, 신선한 공기, 푸른대지, 나무와 꽃과 잔디, 들, 새소리, 사색, 자연과의 참만 남과 대화, 이 모든 것이 나만이 누리는 축복일까.
나는 내 고향 시흥 능마을(능곡삼거리)을 사랑한다. 그래서 내 생애에 한 번도 고향마을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푸른대지 대자연속에서 나무와 꽃을 심고 가꾸는 전원생활이 교직생활과도 일치하기 때문에 나는 좋다.
해 마다 이맘때면  “이 무슨나무인데 저리 아름다운꽃이 필꼬...” 우리 집 주변 마당가, 정원에 피는 능소화(凌宵花)를 보는 사람마다 걸음을 멈추고 한마디씩 한다. 내가 능소화나무를 가까운 친지로 부터 몇 뿌리 얻어다 심기 시작한 것이 벌써 10수년이 흘렀으니 말이다. 
넝쿨줄기가 나무지주를 타고 올라가며 적황색의 화려한 꽃을 장기간 피우는 관상수로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고급수종에 속한다. 능소화에 매료되어 심기시작한 때만 하더라도, 나무가꾸기와 화초를 좋아하는 취미생활의 일환이었다. 
해마다 이른 봄이면 줄기와 뿌리에서 뻗어난 새끼 묘를 잘라 정원의 감나무, 참죽나무, 은행나무밑에 심고, 밭구퉁이 등에 공터만 있으면 닥치는대로 심어놓은 묘가 수월찮게 불어났다. 지주목을 세우고, 또 심고 해마다 능소화 나무와 더불어 십수년-- 사실 나는 능소화나무에 미쳐있었나 보다. 퇴근 후나 휴일이면 능소화와의 말없는 대화는, 이것은 내면세계를 정화하는 자연교육 시간이었다.
당시, 우연한 기회에 종로5가 꽃나무시장을 지나다 우리 집 능소화와 같은 직경 2-3cm에 길이 2m 쯤 되는 나무한주에 8만원을 호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정도 라면  우리 밭에는 3천여 주가 자라고 있었으니 말이다.
꽃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해마나 분주 묘를 나누어 주며, ‘일 년을 위해서는 꽃씨를 심고, 10년을 위해서는 나무를 심고, 평생을 위해서는 사람을 심으라. 고 한 말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때 팔고남은  우리 집 주변의 능소화는 거대한 굵기와 높이로 자라, 장관을 이루는데 능소화 구경 한번 오라고 초청하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안탑깝고 정말 우울한 일은, 이 아름다운 능소화 피는 마을도 2차로 장곡지구 택지개발 예정지로 지정을 앞두고, 내년에는 모두 다 철거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나의 선조들과 내가 낳고 자란 이 집터, 아름드리 은행나무에서 은행을 따고, 80년 된 산수유가 붉은 열매로 정원을 덮고, 등나무가 은행나무와 어우러져 원시림을 이룬 정원 귀퉁이 작은 연못에는 팔뚝만한 비단잉어와 금붕어가 유영하는 곳, 이른 아침이면 나무에 둥지를튼 산새와 까치소리에 잠을 깨는 우리 집.
전혀 예측 못한 개발이란 미명하에 8대를 이어온 능마을이 ‘터'가 파혜처지는 자연 파괴의 재앙을 맞게 된 이 심정을 그 누가 짐작하겠는가? 이미 둘러쳐진 철판 울타리 넘어, 옆마을 목실과 능골은 1차 능곡지구로 벌써 터 닦기 공사가 지금 한창인데, 이조차 아랑곳 하지 않고 능소화 꽃은 올해도 활발하여 제자리에서 제구실을 다하는구나!
마을이 송두리째 흔적도 없이 살아진 능마을 터위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고, 우리의 삶의 질이 얼마나 나아질 것인가? 수대에 걸쳐 지켜온 지역공동체가 해체되고, 생태계가 오염되어 파괴되는 개발제일주의에 대한 도시주택정책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받게 되는 보상비를 가지고는 현재의 몇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터를 어떻게 장만하라고...그나마 토지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던 소수의 중농이상은, 뿔뿔이 흩어져 먼 곳이라도 농토를 마련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빈농, 소농들은 삶의 주거지를 빼앗기고 쫒겨나는 또 하나의 도시빈민을 양산하는 것이 아닌가 묻고 싶다.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능소화 피는 능마을이여, 내 고향 능곡삼거리 마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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