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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실이 풀리는 저녁

제15회 시흥문학상 대상, 한휼(용인시)씨의 시 부문 선정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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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기자
기사입력 2014-12-02

시흥문인협회(회장 이연옥)가 문학의 저변확대와 수준높은 창작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지난 9월20일부터 10월20일까지 한달간 공모한 제15회 시흥문학상에 한휼(경기도 용인시)씨가 '털실이 풀리는 저녁'(시 부문)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제15회 시흥문학상에는 국내를 비롯 해외까지 총 500여명이 2,365편의 작품을 응모했다.

시부문 1770편, 수필부문 595편에 대한 예비심사를 거,쳐 시 140편과 수필 60편에 대한 본심사에 4명의 심사위원이 심사를 하여 수상자를 발표했다. 심사위원에는 문정희(시인), 박주택(시인), 김종광(소설가), 손홍규(소설가) 작가가 맡았다.

제15회 시흥문학상 수상자는 대상에 한휼의 '털실이 풀리는 저녁'을 비롯 시 부문 3명, 수필 부문 3명 등 총 7명이 수상했다.

우수상에는 시 부문 조현(경기도 고양시)의 '각', 강경아(전남 여수시)의 '트러블 메이트', 지연(전남 전주시)의 '플레이밍' 작품이, 수필 부문에는 엄옥례(대구 수성구)의 '타법', 최호(대전시 동구)의 '부고', 조미정(경상북도 경산시)의 '유주'가 수상했다.

11월29일 시청 늠내홀에서 수상자에 대한 시상식을 진행했으며, 대상은 700만원의 상금이, 우수상에는 각각 100만원이 수여됐다.



  대상 (시 부문)

털실이 풀리는 저녁

한 휼
 
하루 종일 감긴 저녁의 내부는 단단하다 아버지는 무엇이든 감는다 죽은 바퀴벌레를 삼키는 고양이 울음소리 뻐거덕거리는 회사의자와 숙취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와 텅 빈 가죽지갑까지, 무엇이든 감아 표면을 둥글게 만든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뜨개질바늘처럼 늘 아버지의 어깨에 꽂혀있다
 
고양이가 털실을 가지고 노는 저녁은 위험하다 아버지의 올이 풀리지 않는다면 고양이는 맛있는 고양이 스튜가 될지도 모른다 발톱이 빠질 때까지 닫힌 방문을 박박 긁는 것은 괜한 짓이다 발톱이 털실뭉치 속에 박히기라도 하면 그것도 큰일이다 단단한 털실에 턱을 괸 채 밤새 무서운 꿈을 꿔야 한다 몸을 뒤척이다가 고양이 수염이 털실의 눈알을 찌르기라도 한다면, 그때 탈구된 털실의 내부가 털실 바깥으로 튀어나와 벽시계가 멈추기라도 한다면,

털실을 요리조리 드리블 하기 위해 고양이의 발톱은 초저녁부터 안으로 말려들어가 있다 누가 이토록 단단하게 감아놓았나 털실뭉치 깊숙이 파고든 털실의 끝을 찾을 수 없다 털실의 끝을 잡아당겨야 털실 맨 안쪽에 도사리고 있는 아버지의 미간을 펴줄 수 있을 텐데
 
털실이 고양이의 눈동자처럼 동그랗게 감긴 저녁, 고양이가 발끝으로 털실 아래쪽을 툭, 건드려본다 뭉툭한 앞발로 윗목에서 아랫목으로 굴릴 때마다 아버지를 감았던 털실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소매 끝이 풀리자 아버지의 손목시계가 9시 정각을 알린다 뉴스 속 가장들이 한 올씩 풀려 나온다 사고뭉치들은 대부분 털실뭉치들이다 화면이 끓어오르고 털실은 계속해서 라면처럼 풀려나간다
 
털실이 다 풀려버린 아버지의 어깨와 쇄골이 앙상하게 드러난다 어머니가 뜨개질바늘로 고양이의 붉은 털옷을 짓는다 고양이 발톱이 고양이를 밀고 고양이 바깥으로, 빨치산처럼 몰래 빠져나온다


  심 사 평

이번 심사 대상에 올라온 작품들은 고르게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의 형상화뿐만 아니라 메시지도 비교적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어 시를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시가 내용의 전달을 무시한 채 말을 의미 없이 나열하는 것에 비한다면 분명 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기원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대상으로 선정된 「털실이 풀리는 저녁」외 4편은 시적 모더니티를 지니면서도 화자의 서정과 의식을 대상에 의탁하여 표현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고양이나 뿔, 도마나 플러그와 같은 주변의 사물들을 심도 있게 관찰하여 사물이 갖는 힘을 아우르면서 의미를 묘사하는 솜씨는 오랜 공력의 결과라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게 하였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각」외 4편은 화자의 감정을 밀도 있게 전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냈다. 특히 “꽃이 피는데 내가 살지 않은 봄이 온다”라든지 “문은 끝내 열리지 않고/계절과 계절 사이 끼워둔 경첩이 먼 기척으로 남는다”와 같은 표현은 사유의 깊이를 엿볼 수 있었다.

「트러블 메이트」외 4편은 최근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적 모더니티의 흔적인 짙게 깔려 있어 예각적인 느낌을 주었으나 외래어가 지나치게 인유되어 있어 감점요인으로 작용했다.

심사를 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오탈자와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내용과 형식의 완결미에 이르기까지 꼼꼼한 성실함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한다. 선정된 분에게는 축하를,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분께는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문정희, 박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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