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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족'유혹 잣나무 숲길, 봄볕이 그립다

[유혜준의 도보여행] 시흥늠내길 1코스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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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준 오마이뉴스 기자
기사입력 2013-03-27

▲ 시흥 늠내길     © 유혜준


봄이 오고 있다지만 아직 숲은 황량했다. 온통 갈색이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푸른 기운을 조금이나마 간직하고 있었지만, 숲을 푸른빛으로 물들이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하지만 말라붙은 갈색 나뭇잎들 사이로 봄빛이 조금씩 꾸물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산은, 숲은 봄빛이 무르익을 터. 숲을 향해 걸음을 내딛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16일, 오랜만에 길을 나섰다. <시흥늠내길> 1코스 '숲길'을 걸으러 간 것이다. 시흥늠내길은 걷는 이들 사이에 많이 알려져 있다. 많이 알려져 있다는 건 도보여행을 즐기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까이에서 혹은 멀리서 굳이 <시흥늠내길>을 걸으러 온다는 것은 그만큼 길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시흥늠내길은 전부 4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 숲길(13km), 2코스 갯골길(16km), 3코스 옛길(11km), 4코스 바람길15km). '늠내'는 고구려 때 '뻗어나가는 땅'이라는 의미로 쓰였던 말이라고 한다. 우리의 옛말을 찾아 길 이름을 붙인 게 마음에 든다. 특색도 있고, 길 이름을 찾느라 고심한 흔적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걷기 좋은 이 길에 매점은 없어요
  
▲ 시흥 늠내길     © 유혜준
 
<시흥늠내길> 1코스 '숲길' 출발지는 시흥시청.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4호선 전철을 타고 안산역에서 내려 시흥시청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차량을 이용할 경우, 시흥시청에 주차하면 된다. '숲길'은 시흥시청에서 출발해 출발지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이기 때문에 차량을 갖고 가는 것도 괜찮다. 아무래도 가장 바람직한 건 대중교통 이용이겠지만.

숲길의 전체 거리는 13km, 소요시간은 걷는 이의 속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4시간 정도로 예상하면 된다. 중간에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들른다면 1시간쯤은 더 걸릴 수 있다. 코스 중간에 식당이 있긴 하지만, 간식거리나 물을 살 만한 가게는 없으니,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시흥시에서 곳곳에 길 표지판을 잘 비치했고, 길을 알리는 리본이 곳곳에 매달려 바람에 가볍게 날리고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별로 없다. 다만 너무 길을 걷는 데만 열중하다보면 리본을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다. 내가 두어 번 그랬다. 길을 걸을 때는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번갈아가며 보면서 걷자. 이따금 하늘을 봐도 좋고.

걷기 좋은 날이었다. 하늘은 약간 흐렸고, 바람은 불지 않았으며 봄볕은 따사로웠다. 이런 날 걷지 않으면 언제 걷겠나.


폭신한 길, 바닥에 용수철이라도 깔아놓았나
  
▲ 시흥 늠내길 안내꼬리표.     © 유혜준
 
시흥시청 앞에서 길을 건너, 조금 걸으면 숲길 입구가 나온다. 오르막길이다. 그 앞에 <시흥늠내길> 숲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시작부터 오르막이면 숨이 차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날 동행은 옆지기. 주말에 길을 나서지 않으면 TV 앞에 딱 붙어 앉아서 리모컨으로 채널 돌리기에만 힘쓸 터. 옆구리를 푹 찔러 같이 길을 나선 참이었다. 길이란 혼자 걸어도 좋지만, 같이 걷는 길동무가 있으면 더 좋은 법. 특히 숲길은 '친구와 함께 한 느린 산책'이라는 부제가 딸린 길이므로 더더욱.

옥녀봉에 다다를 때까지 걷는 게 가장 힘들다. 늘 그렇듯이 걷기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몸이 낯설어 하고, 내뿜는 숨이 낯설어 하고, 다리와 발이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헥헥, 헥헥, 거친 숨을 쏟아내면서 오르막길을 오른다. 이마에 땀이 배어나온다.

길은 정말로 폭신하다. 마치 바닥에 용수철을 깔아놓은 것처럼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탄력이 느껴진다. 봄이라는 느낌이 확 다가온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어느 사이엔가 녹았다. 땅이 갓 녹았을 때는 질척거리지만, 봄기운이 점점 짙어지면 수분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질척거리지 않게 된다. 요즘이 그 시기인 것이다.

옥녀봉으로 가는 길에는 걷는 이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산악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인가 보다.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이 하나씩 둘씩 나타나더니 계속 뒤를 이어 모습을 드러낸다. 아, 이 길이 산악자전거를 타기 좋은 길인가 보구나. 걷는 사람들은 산악자전거를 피하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은 걷는 이를 피하면서 지나간다.

걸어서 내려가기 쉽지 않은 가파른 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늘 감탄이 터져 나온다. 나는 죽어도 못해,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자고 걷지.

돌아보니 정말 걷기 좋은 길이었네
  
▲ 시흥늠내길 철탑을 지나며.     © 유혜준
 
고압선 철탑 사이로 길이 이어졌다. 철탑 가랑이를 지나가려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보통은 철탑을 멀찌감치 비껴서 길이 나게 마련인데, 길이 있는 곳에 철탑을 세웠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압선이 있는 부근은 전자파가 장난이 아니게 많아서 가급적이면 가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전자파가 우리 몸을 들락거리면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심부를 지나가려니 기분이 약간 찜찜하다. 빨리 지나가자.

'숲길'은 말 그대로 숲 사이로 이어진 길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는 길은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을 '숲길'을 걸으면서 했다. 숲으로, 숲으로 이어지는 길은 내가 도시를 지나서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해준다. 그 길에 아직 겨울의 황량함이 깃들어 있다해도 말이다. 아주 먼 산골짜기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마저 자아내는 것이다. 

산등성이나 산봉우리에 올라가면 듬성듬성 자리를 잡은 아파트촌이 그런 환상을 순식간에 깨뜨리지만.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은 아마도 삼림욕을 하는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할지 모르지만,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공기는 확실히 맑고 개운하고 시원한 맛을 지니고 있다.

길은 길을 따라 이어졌다. 좁은 숲길을 지나면 오르막길이 나오고, 그 길을 벗어나면 기다려다는 듯이 내리막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만에 걷는 발걸음이라 그런지 종아리가 묵직한 것도 같다. 하지만 30분쯤 걸으니, 걸음이 가벼워진다.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한다. 역시 몸은 내가 예전에 한 일을 기억하고 있구나. 걷는 법을, 걷는 느낌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가 슬며시 풀어내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안동권씨세장지묘원(安東權氏世葬之墓園)'이라고 쓰인 표지석 앞에서 옆지기가 사진을 찍겠다고 폼을 잡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옆지기는 안동 권씨였다. 34대손. 결혼한 뒤 지금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얘기다.
 
▲ 군자성황사지     © 유혜준


군자봉 사색의 숲에는 군자성황사지가 있다. 사당은 흔적도 없고 대신 그 자리에는 오래 묵은 나무 한 그루가 메마른 나뭇가지들을 길게 내뻗으며 서 있었다. 나무 주변에는 나무로 만든 울타리가 쳐져 있다.

전설을 간직한 곳은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곳 군자성황사지(君子城隍祠址) 역시 전설이 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와 왕비 안씨를 모시던 곳이라는 설과 함께 고려 현종의 장인을 성황으로 모셨다는 설이 공존한다는 게 나무 옆에 있는 표지석의 설명이다.
 
▲ 진덕사 대웅전 옆을 지나면 <시흥늠내길> 숲길이 이어진다.     © 유혜준


숲길은 39번 국도 때문에 갑자기 뚝 끊어졌다. 6차선 자동차도로가 펼쳐진다. 갑자기 꿈속을 헤매다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 같다. 6차선 도로를 건너서 진덕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시흥늠내길> 숲길은 진덕사 대웅전 앞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졌다. 다시 숲길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맞이한다. 진덕사에서 가래울마을을 지나 잣나무 숲으로 가는 길 역시 '숲길'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숲길'을 걸으면서 옆지기와 나는 몇 번이나 감탄했다. "정말 걷기 좋은 길"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걸었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시흥늠내길>을 많이 찾는 건 걷기 좋은 길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걷기 좋은 길을 찾아나서고, 걷기 좋은 길을 즐겨 걸을 수밖에 없다.

사티골 고개인가 보다. 커다란 평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아, 낮잠자기 아주 좋은 곳이다. 옆지기와 나는 신발을 벗고 나란히 누워서 시체놀이를 했다. 봄볕이 어찌나 따뜻한지 포근한 이불을 덮은 것 같았다. 그대로 누워 있다가는 잠이 들어버릴 것 같아 일어난다.
  
▲ 능곡동 선사유적공원     © 유혜준
 
▲ 시흥늠내길 숲길은 장현천을 따라 시흥시청까지 이어진다.     © 유혜준

  
 
길은 선사유적공원을 지나 장현천으로 이어졌다. 장현천을 따라 걷다보니 길 건너편에 있는 시흥시청이 보인다. 다 걸었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래봤자 13km를 걸었을 뿐인데, 뭘.

시흥시청에 도착한 시간은 3시 30분. 11시 50분에 출발했으니, 3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걷기 난이도는 중간쯤. 느긋하게 숲을 즐기면서 걷기 좋은 길이다. 봄빛이 무르익으면 지금보다 더 보기 좋은 풍경이 펼쳐질 게 분명하다.
 
▲ 시흥늠내길 1코스 숲길 안내표지판     © 유혜준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유혜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경기팀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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