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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하는 거 별로 좋아 하지 않아, 왜 기분나뻐?”

[연재소설]아이들은 정말 싸우면서 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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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선 기자
기사입력 2011-10-31

“문성아! 여기”

뒤를 돌아보니 성구였다. 어렸을 때 매일 붙어 있다시피 하던 녀석이다. 불과 몇 미터 차이로 학군이 달라 서로 다른 초등학교에 갔고, 그 이후 우리 집이 이사하면서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다. 

“성구야 너 몇 반 됐냐?”
“나 2반 너는?”
“난 1반” 

성구는 어렸을 때 분명 나보다 키가 작았다. 그동안 키 크는 약이라도 먹었는지, 나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다고 느껴질 만큼 키가 커져 있었다. 얼굴에 여드름도 듬성듬성 나 있어서 그런지 나이도 나 보다 서너 살은 더 먹어 보였다. 

성구 옆에는 얼굴이 하얗고 키가 성구만큼이나 큰 아이가 서 있었다. 조각상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잘 생겼고 조각상만큼이나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는 아이였다.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에서 흐르는 냉소적이 기운 때문에 쉽게 친해지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사 혀, 같은 반 친구 효준이라고……같은 국민 학교 나왔어”
“나 문성이여, 반가워”

성구 친구라기에 난 반갑게 손을 내밀었지만 효준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마지 못한 듯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악수를 하면서도 나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순간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효준이는 원래 말이 없나보네!”

이 말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무시당하고 난 후의 배배꼬인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한 마디였다. 

“응 나 원래 말하는 거 별로 좋아 하지 않어, 왜? 기분 나쁘냐?”

완전히 시비조였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주눅 들었다고 느낄 것이고 가시 박힌 말이라도 한마디 던지면 당장 싸우자고 덤벼들 것 같았다. 아무래도 녀석의 큰 키와 차가워 보이는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 나를 성구가 구해줬다.

“야야! 효준아 너 왜 그려, 문성이는 어렸을 때부터 옆집에 살던 친구여, 우리 만두나 먹으러가자”

이렇게 해서 불편한 순간이 그럭저럭 넘어갔다. 그날 우린 읍내에 있는 만두집에서 만두를 먹은 다음 셋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갔다. 우린 모두 같은 방향 이었다. 나의 중학생 시절은 이렇게 배꼽친구 성구와 성구의 단짝 효준이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천렵

마을을 가로 지르듯 흐르고 있는 개울은 늘 맑았다. 산에서 곧장 내려오는데다가 물이 내려오는 길에 인가도 몇 채 없어서 이 물질이 섞일 염려가 거의 없었다. 5월이 저물어 가던 때였다. 물에 들어가기에는 좀 이른 쌀쌀한 시기였지만 우린 개의치 않고 개울물에 뛰어 들었다. 

“성구하고 효준이가 저쪽에서 몰어, 내가 반도 붙잡고 있을게”

성구하고 효준이가 흙탕물을 일으키며 고기를 몰았다. 반도를 잡고 있는 손에 무엇인가 퍼덕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고기가 몇 마리 들어온 게 분명했다. 반도를 들어보니 은빛 피라미 몇 마리와 모래무지가 잡힌 게 억울하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퍼덕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몇 번 반도를 들어 올리자 어죽을 끓이기에 충분한 만큼의 고기가 어망에 채워졌다. 

석우는 열심히 불을 피우고 있었다. 석우는 같은 마을에 살고 있고 나와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친구다. 한 때 나를 못 살게 굴기도 한 녀석이었지만 같은 중학교에 진학해서 같은 반이 된 인연으로 친하게 지내게 됐다. 몇 년 전 사촌 용구를 꼬드겨 나와 싸움을 시킨 녀석이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끄집어냈는데도 물에 넣자마자 신나게 헤엄을 치는 정신 나간 물고기가 몇 마리 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해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 석우가 어깨를 툭 쳤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냐?”
“응 물고기가, 내장을 다 꺼냈는데도 헤엄치는 게 신기해서”
“물고기는 기억력이 아주 나쁘다고 하잖여, 그래서 좀 전에 지 배가 갈라진 것을 까먹은 겨”
“그려, 물고기가 기억력이 그렇게 나뻐?”
“아! 그런 말도 있잖여, 붕어머리라고! 머리 나쁜 사람한테”

어쩌면 사람도 물고기처럼 머리가 나쁠 거라 생각했다. 그 일(용구를 꼬드겨 나와 싸움을 시킨 일)이 있은 후, 괘심한 마음에 거의 1년이 넘도록 말도 않고 지내던 석우 녀석과 난 지금 시시덕거리며 놀고 있다. 이것 하나만 봐도 사람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음이다. 

땅 거미가 내려 앉아 주변이 어두컴컴할 때 쯤 어죽이 끓여 졌다. 배가 고팠기 때문인지 아니면 석우 녀석 솜씨가 좋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날 먹은 어죽은 평생 다시는 맛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 만큼 맛있었다. 어죽이 다 끓여질 때 쯤 우린 배가 고파서 거의 허리가 꼬부라질 지경 이었다. 

“한 잔 하자” 라고 하면서 효준이가 소주병을 꺼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성질 급한 별이 하나 둘 떠오르고 있었고 모닥불은 붉은 빛을 내며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쓰고 냄새만 맡아도 취한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주저스러웠지만, 분위기상 도저히 잔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잔을 받지 않으면 녀석들에게 꿀린다고 생각했다. 녀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당연히 나도 할 수 있어야 했다. 

효준이와 성구, 석우는 익숙한 듯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난 그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고 있다가 "안 마셔?” 라는 핀잔 섞인 한 마디를 효준이한테 듣고서야 눈을 꼭 감고 소주를 삼켰다.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부딪쳐 보는 것이다. 실제로 부딪쳐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주가 그랬다.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쓰지도 않았고 어른들에게 듣던 것처럼 어지럽지도 않았다. 효준이와 성구, 석우가 연거푸 소주를 잔에 따라 마셨고 질세라 나도 쉬지 않고 마셔댔다. 

이렇게 소주를 들이 부으면서 어쩌면 내가 술이 아주 센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했다. 어른들은 분명 속이 타들어 가고 정신이 없어서 서 있기도 힘들다고 했는데, 어지간히 마셨는데도 정신이 없기는커녕 기운이 벌컥벌컥 솟는 기분이었다. 

이 때 했던 생각이 무척 건방진, 나만의 착각 이었다는 것을 불과 몇 시간 후에 깨닫게 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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