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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뻑' 소리가 들리며 눈앞이 흐릿해지고

[연재소설] 아이들은 정말 싸우면서 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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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선 기자
기사입력 2011-08-01

사람은 싫든 좋든, 의도를 하든 의도 하지 않든지 간에 서로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며 살게 된다. 이것이 군집 생활을 하는 동물들의 운명이다. 그래서 누구와,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느냐가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일이 된다. 

그 ‘누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은 역시 가족이다. 어떤 부모를, 어떤 형제를 만나는 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성장기 때는 더욱 그렇다. 가치관이나 세계관 같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 사항이 성장기 때 대부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부모 다음으로 내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나보다 여섯 살 많은 형이다. 형은 병약하고 심약했으며 천성적으로 순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난 그 형에게 지독한 폭력을 맛보고 그로인한 증오를 배우게 된다. 

형은 태어나자마자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형을 낳자마자 어머니는 산고의 후유증으로 몸져누워 생사를 넘나들게 됐고 그 탓에 형은 젓 한 모금 먹지 못한 채 방치 되다시피 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했던 탓에 병원에 입원시킬 생각은 감히 품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 아버지의 지극정성으로 어머니와 형 모두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형은 그때 심한 영향부족으로 시력을 상당부분 잃게 됐다. 그런 탓에 당시 시골 마을에서는 보기 드물게 형은 초등학교 때부터 안경을 끼게 됐다. 

병약한 사람이 대부분 그렇듯 형도 전형적인 초식동물 이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할 줄도 몰랐고 화낼 줄도 몰랐다. 동생인 내게도 만찬가지 였다. 형은 내가 어지간히 앙칼지게 대들어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런 형이 사춘기가 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육식동물 흉내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벌컥 벌컥 화를 내기도 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부모님에게 대들기도 했다. 또 한 눈에 봐도 껄렁껄렁한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며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셨다. 

그렇게 착하고 순했던 형이 비뚤어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심한 열등감과 좌절감, 따돌림 등이 원인이 됐을 것이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형은 몸도 약했고 공부에도 관심이 없었다. 또 안경을 끼고 다닌 탓에 어렸을 때부터 ‘쌍창’ ‘안경잡이’ 란 놀림에 시달렸다. 이렇게 놀림을 받을 때마다 안경을 벗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안경알을 깨먹기 일쑤였다. 

부모님은 이런 형을 좀 더 강하게 키우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빵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와도, 멀쩡한 안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깨 먹어도 모두 본인들 탓으로 돌렸다. 부모 잘못 만나 눈이 나빠져서 이 애가 이렇게 됐다며 ‘내 탓이요’ 만 외칠 뿐 정작 중요한 해결 방법은 찾지 않은 것이다. 

반대로 형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원인을 ‘부모 탓’ 이나 ‘환경 탓’ 으로 돌리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공부 못 하는 원인도, 결국은 중학교를 중퇴한 이유도, 술 마시고 취해서 수리조합 뚝방 에서 잠든 이유도 가만히 듣다보면 결국은 하나같이 ‘부모 탓’ ‘환경 탓’ 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 무서운 기억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집안에 도둑이 들었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게 검둥이 녀석이 짖지를 않는다. 혹시 검둥이를 도둑이 해친 게 아닐까! 일어나서 엄마와 아버지를 깨워야 하는데 좀처럼 눈이 떠지지 않는다. 어쩐 일인지 천근만근 몸이 무겁다. 그러는 사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가까스로 눈을 떠 보니 안방에 혼자 누워있었다. 기분 나쁜 꿈 이었다. 온 몸이 욱신욱신 쑤시고 머리가 깨어질듯 아팠다. 문 밖에는 이미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내가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는지, 형이 도대체 왜 그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어서 서러웠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 이었다. 부모님이 외할아버지 댁 가을걷이를 도와주기 위해 집을 비우자마자 형은 내게 막걸리 심부름을 시켰다. 당시 형은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과 집을 오가면서 빈둥대고 있었다. 

담배 심부름, 막걸리 심부름은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이었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구멍가게는 꽤 멀었다. 아무리 서둘러도 짧은 초등학생 다리로 30분은 걸어야 다녀 올수 있는 거리였다. 

“싫어 너무 멀어”
“이 자식이...좋은 말 할 때 빨리 갔다가 와”

위협적인 형 태도에 주눅이 들어 난 어쩔 수 없이 노란 주전자를 들고 집을 나섰다. 가게 집 주인 영환이 아저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담배를 꼬나물고 있다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며 막걸리 독으로 갔다. 영환이 아저씨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하지는 못했다. 

영환이 아저씨는 나를 친구처럼 대해 줬다. 내가 주전자를 들고 나타나면 냉큼 막걸리를 부어주고는 그 당시 귀하디귀했던 요구르트와 팥빵을 내왔다. 그러고는 쉴 새 없이 얘기를 했다. 

난 영환이 아저씨가 하는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쏼라쏼라’ 하는 영환이 아저씨 말을 오랜 시간 들어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귀로 알아들은 것은 아니다. 표정이나 눈빛 손짓을 보고 대강 짐작한 것이다. 영환이 아저씨 표정과 몸짓은  참 다양했다. 눈이 휘둥그레 지기도 하고 입을 크게 벌리며 뒤로 넘어지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그게 재미있어서 끈질기게 아저씨 말을 들어 주다가 보니 어느새 친구가 돼 있었다. 친구가 된 이후로는 ‘쏼라쏼라’ 하는 소리가 아버지가 해 주는 옛날 이야기 처럼  또렷하게 귀에 들리기도 했다. 

그날도 아저씨는 신이 나서 한참을 얘기했고 난 달착지근한 요구르트를 홀짝 거리며 흥미 진진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가끔은 내 얘기도 하면서. 

형은 낚아채듯 주전자를 받아 큰 양은 대접에다 막걸리를 들이 붓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막걸리를 들이킬 때 마다 ‘왜 이렇게 늦었냐?’ 고 따지듯이 목젖이 들썩였다. 

“무릎 꿇어”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였다. 형 눈은 이미 풀려 있었다. 막걸리를 몇 사발이나 들이키고 난 이후 였다. 겁이 덜컥 나면서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렇다고 아무 이유 없이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왜”
“꿇으라면 꿇어 이 자식아”

이 말과 함께 형은 피우던 담배를 내 얼굴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팔뚝만한 막대기를 사정없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선생님 매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형은 살기 등등 하게 막대기를 휘둘렀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뻑 소리가 들리면서 눈앞이 흐릿해 졌다. 머리를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아무래도 엄마 아버지 얼굴을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리려고 안감 힘을 써 봤지만 소용없었다. 

깨어보니 혼자 안방에 누워 있었다. 온 몸이 욱신거리고 머리는 깨질듯이 아팠지만 신기하게도 얼굴은 말짱했다. 그 후로 일주일간이나 난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다. 몸살이 걸린 듯 열이 났고 천정이 빙빙 도는 것 같아서 누워 있는 일조차 고역 이었다. 

난 엄마 아버지한테 몸이 아픈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형은 며칠 후에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부모님은 다시 서울로 취직 하러 갔다고 생각했는지 형을 찾지 않았다. 

일주일 후 난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학교에 갔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증오가 자라고 있었다. 

엄마 아버지에게 형한테 맞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도 증오 때문이었다. 아버지 엄마에게 말해서 혼나게 하는 것은 어쩐지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형만큼 커서 직접 복수하고 싶었다.

형은 내게 있어 늘 연민의 대상 이었다. 형은 어려서부터 또래들에게 늘 당하기만 했다. 그 때 마다 난 눈물을 훔치며 어서 커서 형을 괴롭힌 녀석들을 혼내 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 일 이후 형은 증오와, 복수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난 끝내 복수를 할 수 없었다. 핏줄이 당겨서 모든 게 용서 됐기 때문이 아니다. 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망가졌다. 내가 복수하기 전에 미리 망가져 버린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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