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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is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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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렬
기사입력 2011-03-05

한눈에 봐도 아주 먼 나라에서 시집온 임신부는 전에 다니던 병원의 산모수첩을 꺼내놓으면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망설이는 모습이다. 나 또한 어느 나라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눠야하나 순간적으로 당황이 됐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질문했다가 아주 유창한 우리말의 답변이 돌아왔을 때의 부끄러움을 몇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보호자가 함께 왔다면 ‘우리말 잘하시지요?’ 먼저 묻고 진료를 시작해도 되는데, 처음 우리 병원에 오는 길에 그녀는 혼자였다. 의례적으로 ‘뱃속의 아기는 잘 놀지요?’ 한 마디를 던졌지만 커다란 눈만 껌벅거릴 뿐, 병원을 찾은 자신을 배려하지 않거나 영어가 전혀 되지 않는 의사를 잘못 찾아온 것 같은 낭패감을 순간적으로 그녀의 얼굴에서 읽어냈다.

아주 초보적인 영어로 그녀의 불편한 증상들을 묻자 그녀는 아주 유창한 영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그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내가 숨이 찰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그녀 차례가 되었다. 내가 얼마만큼 그녀의 영어를 이해했는지 그녀가 판단할 차례가 되었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까짓것 의학적인 이야기이고 또 내 전공인 산부인과 증상들을 못 알아들었다 한들 그게 얼마나 되겠는가.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떠오른 이후 우리는 편안하게 진료실에서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분만예정일이 지나도 산통의 기미는 없고 양수량이 현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런 경우 분만시 예견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설명하고 유도분만의 필요성을 설명한 후에야 나타난 보호자는 며칠의 여유를 더 달라고 했다. 그래서 약속한 날짜에 유도분만이 시작되고 극심한 산통이 시작되자 그녀는 안타깝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보호자를 찾았는데도 분만대기실 그리고 병원내에는 없었다.

핸드폰으로 어렵게 연결된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 무통분만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제야 분만대기실은 조용해졌고 예의 그 미소를 그녀의 얼굴에서 볼 수 있었다. 분만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드디어 탯줄로 연결된 자신의 피붙이와 분리되는 순간이 되었다. 아기는 건강하게 울어댔고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런 평화로운 순간은 잠시 뿐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산후출혈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그녀의 양쪽 팔에는 몇 개의 수액들이 치렁치렁 매달리고  급하게 구한 혈액들을 빠른 속도로 그녀의 혈관 속에 쥐어짜듯 흘러 보냈다. 희미해지는 그녀의 의식을 깨우며 우리는 혼신의 힘으로 그녀의 위태로운 생명을 지켜내고 있었다.

먼 타국에 와서 추운 겨울밤 나목처럼 외롭게 떨고 있는 그녀를 붙잡고 나는 잠시도 한눈을 팔수가 없었다. 그렇게 떨어진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녀는 자꾸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그때 희미하게  “Jesus is my life, Jesus is my life ......” 그녀의 기도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걱정하지 말라, 당신의 하느님이 당신을 지켜주실 것이다’ 희미해지는 그녀의 의식을 깨우면서 3시간여의 사투 끝에 그녀의 모든 것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산후출혈은 멈췄고 혈압이 점차 안정되면서 그녀는 긴 잠에서 깨어난 듯 조금 전의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주 먼 이국의 땅에 홀로 와서 출산의 기쁨도 잠시,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본능처럼 느꼈을 죽음. 그 앞에서 연약하게 되풀이하던 그 기도.  “Jesus is my life, Jesus is my life......." 혈관의 통로가 막히지 않게 그녀의 두 손을 거머쥔 우리 모두는 같이 기도했다. 꺼져가는 생명을 제발 살려달라고, 꼭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차가운 연말의 밤에 나는 그렇게 고독한 기도를 오랫동안 했고 그 기도는 이루어졌다.

병원 문을 나선 늦은 밤거리에서, 남아있는 내 의업의 앞날에 또 얼마나 많은 그런 절대 절명의 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 우리들의 앞날에 지뢰밭처럼 펼쳐진 재난의 길.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는 곳에 숨어 우리가 나타나기를 기웃거리는 저 불길한 시련. 그러나 누구에게나 어떤 일이나 시련이 없을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한갓 망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우리들은 지난날들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다.

잘 닦여지지 않은 거친 길을 두려워만하면 어떤 변화도 한 발작의 전진도 이룰 수가 없다. 두려워하지 않고 희망에 대한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열어가야 한다. 역사는 매번 정의롭고 희망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 또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는 언제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최준렬님은 중앙산부인과 원장이십니다. 소래문학회(http://cafe.daum.net/soraeliterature)에서 더 많은 글들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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