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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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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렬
기사입력 2011-01-24

朴 兄 !
올 새해 아침은 유난히 추웠고 창밖 어디에나 눈길을 주어도 지난 연말에 내린 눈이 성성하게 살아 그 기세가 대단했지요. 여느 해 같으면 새해 첫 날 이른 아침에는 집 가까운 비둘기 공원을 달리거나 소래산 정상까지 등산을 하면서 결의를 굳게 다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한없이 느림을 부리다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났어요.

타고 갈 기차가 12시를 넘어서 출발하는 탓도 있지만, 이제는 새해 아침부터 호들갑을 떨면서 설치지 않으려는 내 굳은(?) 의지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아내가 출근한 뒤에 일어나 아들 녀석과 아침식사를 대충 마치고 설거지까지 한 후에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기차표를 하루 전에야 예약한 것도 평소처럼 내 차로 갈까 몇 번 망설이다가 이제는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 않기로 한 뒤늦은 내 결심 탓입니다.

눈 쌓인 들판과 산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어머님을 보고 싶어 전주로 향했습니다.
 
朴 兄은 지근거리에 부모님이 계시지만 저희 우리어머니는 米壽의 나이로 전주에 혼자 계십니다. 아직까지 홀로 밥을 지어 드시고 아파트 내에 있는 경로당에 다니시면서 소일하시지만, 모시고 살지 않는 나는 항상 어머니에게 미안하고 죄스럽기만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들과 함께 사는 것보다 혼자서 사시는 것이 편하다고는 말씀은 하시지만 곧이곧대로 알아들어야할  말씀이 아니다는 것은 朴 兄도 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 편한대로 하세요'라고 여러 자식들은 짐직 어머니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얼마나 비겁하고 편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일인지 경험해본 사람들은 다 알 것입니다.
어느 새 나도 어머니의 의견을 깍듯이 존중하는 효성스런(?) 자식이 되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에 대한 책임과 보답을 그처럼 비겁하고 손쉽게 회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 모두는 아주 평화롭게 잘 살아왔답니다.
 
朴 兄 ,
그런데 말입니다. 얼마 전부터 저희 어머니는 온몸이 가려워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소연 합니다. 자다가도 가려워서 자꾸 깨시곤 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전주에 살고 있는 가족 모두가 수소문해도 용하다는 피부과를 여기저기 쇼핑하듯이 모시고 다녀도 증상이 전혀 호전되지 않아 마침내 대학병원 피부과에도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가려운 증상이 가시지 않아 걱정이 많습니다.

병원에서 처방한 로션을 온 몸에 바르고 음식을 가려서 드시기도 하지만 지금도 주무시다가 가려워서 깨시곤 한다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소식을 전해들은 친척들은 무슨 해수탕이 좋다느니 모처에 있는 어느 피부과가 용하다느니... 어느 때는 내가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 자식된 도리를 하는 것인지 헛갈릴 때가 많습니다.
 
익산에서 내려 택시로 전주까지 갈까하다가 무궁화호로 갈아타고 전주역에 내려 아주 느릿느릿 어머니 집을 찾았습니다. 그만큼 어머니를 뵙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올 한해는 아주 느리고 편안하게 살려고 작정을 한 것입니다.

노모에게 저녁을 지어달라고 말할 수도 없기도 하지만 모처럼 어머니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이름난 식당을 찾아 갔었지요. 평소 너무나 소식하시고 고기류를 드시면 소화가 되지 않아 불편해하셔서, 식당을 선택하기 전에 먼저 어머니의 의중을 떠보지만 쉽사리 결정을 해주지 않아 자식들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때가 많았는데 그날은 의외로 고기를 드시고 싶다하셨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맛있게 그리고 많이 드시는 것을 보고 기쁘기도 했지만 소화가 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밥맛이 없다고 너무 드시지 않아 자식으로서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체중이 적게 나가시는 분이세요.

생각해보면 혼자서 지어 홀로 드시는 식사가 얼마나 맛있겠어요? 모처럼 찾아온 아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재미가 입맛을 북돋았을 것이 틀림없어요.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과 가장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식사를 같이 하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朴 兄 ! 그 하찮은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집에 돌아와 어머니 손이 닿지 않은 등에 로션을 발라드리는데 바짝 마른 몸과 축 쳐진 피부 그리고 그 피부 밑에는 지방층이 거의 없어 내 손바닥에 온전히 전해지는 척추뼈와 갈비뼈의 그 딱딱한 감촉, 마치 해변에 쌓여있는 자갈돌을 쓰다듬는 느낌이었어요.

허리뼈가 많이 굽기도 하셨지만 옆으로 굽혀진 측만증이 심했어요. 힘들고 모진 세월이 그렇게 심하게 굽혀놓았을 어머니의 앙상한 등뼈.

어머니 등 뒤에 앉아 로션을 발라드리면서 나는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고 능숙하게 울 수 있었습니다. 나도 살아온 날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 정도의 눈물을 들키기야 하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그 가려움도 어느 정도는 외로움 탓이기도 합니다. 그 원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치료해드리지 않은 내가 부끄러워 울고 있었던거지요.
 
아무런 짐도 가지고 가지 않았으니 내가 입고 잘 옷이 없는 것은 당연했요. 추운 겨울에 잠옷도 없이 잘 수가 없어 보일러 온도를 올려달라고 했지요.

저희 어머니는 더우면 피부가 더 가려워서 잠을 못 주무시는 것을 알았지만 나도 엄동설한에 부들부들 떨고 잘 수는 없잖아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찜질방에서 잔 것처럼 저는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달가닥 거리는 소리 때문에 눈을 떴는데 어머니는 그 전날 무심코 던진 기차시간을 기억했는지 아들의 아침밥을 준비하시는 거예요. 평소 늦으면 아침 한끼 쯤이야 가볍게 건너뛰기도 하고 기차여행의 즐거움 하나를 기대했는데, 아시잖아요? 좁은 통로를 능숙하게 밀고 다니는 군것질이 가득한 손수래.

그러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침밥과 시래기국 그리고 김치와 갓김치 파김치가 다지만 어머니가 차려준 음식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잖아요.
 
기차시간이 촉박해서 老母가 식사를 다 마치기도 전에 아들은 일어나야 했습니다. 추운데 들어가지도 않고 엘리베이터에 제가 탈 때까지 지켜보시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힘차게 택시를 잡으러 뛰어가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는 거예요.

조심해서 가라고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 4층 창문을 열고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셨던 어머니와 도망치듯이 뛰어가는 내 모습이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부끄러운 광경인가요?
 
朴 兄,
눈 쌓인 벌판을 소리 없이 달리는 기차 안은 참 따뜻했어요. 차창 밖의 풍경이 무료해지면 읽으려고 가지고 갔던 마이클 센델 교수가 쓴 “왜 도덕인가?”란 책을 몇 장 넘기다 덮어버리고 눈을 감고 생각했습니다.

더 중요하고 더 따뜻한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은 일들을 왜 이렇게 미뤄놓고 살았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쁘게만 살아왔는지...


최준렬님은 중앙산부인과 원장이십니다. 소래문학회(http://cafe.daum.net/soraeliterature)에서 더 많은 글들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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