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민국 칼럼] 함께 살아야 오래도록 행복하다

가 -가 +

이민국 편집위원
기사입력 2020-12-29

▲ 이민국 5대 시의원     ©컬쳐인

해마다 이맘때면 거리의 이곳저곳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고 구세군의 모금활동과 자선단체들의 활동은 물론 전국의 각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돌보는 일들이 연례행사로 이어오고 있었다.


이러한 행사들 중에 특별히 많은 액수를 기부하였거나 특별한 사연이 있는 활동이나 독지가들이 미담으로 소개되며 그것들이 년말의 추위를 따뜻하게 녹여주는 이야깃거리로 등장했다.


또한 새로운 한해를 잘 설계 할수 있도록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우고 정동진을 비롯하여 전국의 해맞이 행사들로 한해의 소원을 비는 희망의 일들이 연례 행사처럼 있어왔던 시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렇게 각박해지고 포승줄에 묶인 것 처럼 사람들이 꼼짝 못하게 된 이유에는 코로나 19가 전 세계의 모든 인류들의 함께하는 공동체의 정신을 마비시켜 놓은 결과일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구촌 모든 인류들이 코로나 19에게 벌벌 떨고 있을 때에도 '나는 괜찮고 너는 안 된다'는 내로남불의 생활들이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이 먼곳이 아닌 우리의 이웃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들인 대구지역의 신천지 포교활동 8.15광복절 광화문집회 마스크 미 착용자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선량한 시민에게 마구잡이로 폭행하는 사례들을 볼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가 국가의 정치지도자를 바꾸어놓은 사례도 우리는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에 힘입어 초기 코로나19 방역에 국민들과 의료진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수 없다는 찬사를 듣고, 그러한 국민적 여론을 바탕으로 지난 총선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상 하나의 정당에서 과반수가 훨씬 넘는 의석수를 차지하는 결과들을 내놓기도 하였다.


이렇게 코로나 19는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코로나19의 폐단으로만 돌리기에는 우리들의 민낯을 들어내 보인 것이 아닌가 싶다.


태초에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어서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셨다. 이렇게 우리는 숨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며 잘살고 다스리라고 우주를 공짜로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숨이 통하는 사람들이 가까이하면 병들고 죽는다.


왜 그럴까. 우리는 코로나에 앞서 우리들이 행한 지난날들의 행동들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급격한 산업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은 발달되고 성과는 크게 나타날 수 있지만 이로 인한 지구의 병들음을 책임 지겠다는 나라는 없다.


또한 인문학은 모든 것들을 데이터로 해결 할려고 하는 알고리즘의 발달로 인간들과의 관계를 차단하며 이웃은 무너져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내로 남불의 정신으로 공동체 삶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무너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예전에 우리 진영의 관계가 오늘은 상대진영이 되어서 서로를 공격하며 이로 인하여 서로를 발가벗기는 만신창이가 된 모습들을 지금, 다름 아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빗대서 신축년에 새기며 살아가야할 전국의 교수들이 뽑아낸 사자성어 我是他非(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라는 책임을 남에게 돌리려하는 삶이 지속되는 한 초창기의 코로나 방역의 방법인 사람이 먼저다 라는 사람중심 공동체중심으로 되돌아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코로나19의 확진자들이 초창기 보다 더 많게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어느 것이 우선인지 모르는 정치 싸움으로 코로나 19방역에 소홀함은 없었는지 내가 살기위해서 상대를 쓰러트리면 결국은 서로의 쓸데없는 소모전으로 '입술이 망가지면 이가 시리다'는  脣亡齒寒(순망치한)을 겪게 될 것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최신기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컬쳐인 시흥. All rights reserved.